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 9조원' 시대를 열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고히 한 결과다.
당분간 시장에서 주도적 위치를 가져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점은 실적 흐름에 의문 부호가 달리는 대목이다.
하반기 6세대 HBM4 양산을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지켜내는 것이 실적 호조를 이어가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24일 2분기 잠정실적 발표를 통해 매출 22조2320억원, 영업이익 9조2129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5.4%, 영업이익은 무려 68.5% 증가한 것이다.
송현종 SK하이닉스 사장은 이날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지난 분기는 무역 분쟁과 경기 불확실성 등으로 인한 수요 둔화 우려와 함께 시작됐지만, 빅테크 기업의 적극적인 AI 투자와 AI향 메모리 수요 성장이 이어지면서 예상보다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됐다"며 "하반기 신제품 출시에 따른 수요 성장세가 예상되는 만큼 재고 조정을 위한 급격한 수요 감소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을 처음 추월한 뒤 격차를 키우고 있다.
이 같은 독주는 ▲HBM3E 12단 조기 양산 ▲엔비디아 납품 확대 ▲차세대 HBM4 샘플 선제 공급 등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공급 우위에 기인한다.
HBM의 경우 양산 난이도가 높을 뿐 아니라 수율 확보에 시간이 필요하다.
SK하이닉스는 선제적으로 기술을 확보한 데 이어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한 공급망까지 구축했다.
전체 D램 출하량 중 HBM 비중은 10%대에 불과하지만, 영업이익 절반 이상이 집중돼 있다.
엔비디아에 집중된 포트폴리오를 두고 고객 다변화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하는데,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의 행보가 새로운 가능성을 시사한다.
두 사람은 최근 미국에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AI 인프라 투자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AI 산업이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지만, '소버린 AI' 구축을 위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공격적인 투자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장기적으로 고성능·고부가 메모리 수요를 견인할 새로운 동력이 될 거란 판단이다.
HBM3E 12단 공급 비중을 늘리면서 3분기 영업이익 10조원을 돌파할 수 있을 거란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이런 독주가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미국이 예고한 반도체 품목 관세도 변수다.
무엇보다 시장에선 HBM 경쟁 과열, 이로 인한 평균판매가격(ASP) 하락에 대한 우려가 꾸준하다.
경쟁사가 공급을 확대할수록 단가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마이크론은 SK하이닉스에 이어 두 번째로 엔비디아에 HBM3E 12단을 공급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도 하반기 HBM4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외국계 투자사 골드만삭스는 지난 17일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조정했다.
골드만삭스의 보고서에 '내년 HBM3E 가격이 올해보다 30% 하락하고 HBM4 가격 프리미엄도 이전 세대의 45%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일시적으로 8% 급락했다.
이 경우 기술적 측면에서 수율이나 원가 경쟁력 확보가 핵심이다.
SK하이닉스는 주요 고객사의 신제품 출시 주기에 맞춰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는 '타임 투 마켓(Time to Market)'으로 확고한 시장 신뢰를 쌓았다는 점을 자신하고 있다.
이는 SK하이닉스의 제품을 채택해온 엔비디아 등 대형 고객사가 쉽게 이탈하기 어렵게 만들고, SK하이닉스의 단가 협상력을 유지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다.
후발 주자들의 진입에도 SK하이닉스의 HBM 시장 선두 지위는 당분간 유지될 거란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반기부터 뜨겁게 달아오를 HBM4 경쟁에서도 기술 우위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지난 3월 HBM4 샘플을 주요 고객사에 제공한 사실을 공개하며 시장 선두를 수성해 나가겠다는 의욕을 드러냈다.
현재 엔비디아 측과 성능 최적화를 위해 협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가에서도 SK하이닉스의 질주가 하반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본다.
류영호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HBM 물량을 확정할 때까지 주가 노이즈는 계속될 것"이라면서도 "AI 시장의 성장과 HBM 원가 경쟁력·기술력 면에서 SK하이닉스가 선두 입지를 유지할 거란 당사 시각에는 변화가 없다"고 진단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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