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 쿵쿵 소리에 거실 문 열었더니 소파 둥둥 떠다녀” [전국 할퀸 물폭탄]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7-20 18:28:06

새벽 기습호우에 가평 일대 초토화
산사태·급류로 2명 사망, 최소 9명 실종

“자고 있는데 갑자기 쿵쿵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 봤더니 거실이 반쯤 물에 잠겨있었어요. 떠내려온 소파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였습니다.
”

20일 오전 수마가 할퀸 경기 가평군 일대는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전쟁터를 연상케 했다.
조종천의 물이 차올랐던 가평 대보교에는 나무 등 쓰레기기 잔뜩 쌓여 있었다.
대보교 월류로 대피령이 내려진 가평군 대보1리에서도 민가와 젖소 농장 등 시설은 무너지고 쓰레기가 쌓여 아수라장이었다.
도로 곳곳에서 차들이 배수로에 빠지거나 나뒹굴었고 나무와 전봇대가 쓰러지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경기 가평 지역 집중 호우로 인해 산사태와 홍수 피해가 급증한 가운데 20일 경기 가평군 조종면의 건물들이 무너져 있다. 가평=최상수 기자

이곳 주민들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80대 남성 1명은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대보1리 주민 김희상(74)씨는 “40년 살다가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물이 가슴까지 차올랐다”고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인근 대보2리 주민 김인배(70)씨도 “1층의 80%가량이 물에 잠겨 유리창이 깨지고 식탁까지 떠내려갔다”고 설명했다.

주민들은 새벽 4시부터 조종천에서 물이 불어나 새벽 5시쯤 마을 전체가 초토화됐다고 말했다.
급격히 불어난 물은 순식간에 도로와 민가를 덮쳤고 산사태까지 겹쳐 마을 대부분이 진흙탕으로 돌변했다.

이날 산사태로 쓸려온 흙에 집이 무너지면서 70대 여성이 숨진 신상리 일대도 아수라장이었다.
사고 지점의 주택 3채는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허물어졌고 흙더미 속 파묻힌 냄비 등이 주민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했다.

20일 경기도 가평군에서 새벽 시간에 쏟아진 폭우로 차량들이 파손되어 있다. 연합뉴스

숨진 김모(77)씨를 주민들은 밥 잘 차려주는 이웃으로 기억했다.
“친절한 동생이었는데 어처구니없는 참변을 당해 안타깝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는 전날 경로당에서 닭 수십마리를 손질하고 밤늦게 집에 갔다.
초복 날 마을의 지원을 받아 이웃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초복 당일인 이날 새벽 무너진 집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이들과 약속한 삼계탕을 상에 올리지 못했다.
김씨는 올 초부터 매일 경로당에 나가 자기보다 연배인 이웃을 위해 밥을 차렸다고 한다.
수년 전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홀로 살아왔다.

20일 오전 경기 가평군의 한 교육 시설에서 폭우로 고립돼 있던 학생들이 119 구조대와 탈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이날 새벽 내린 폭우로 경기 가평군에선 낮 12시 기준 2명이 사망하고 최소 9명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됐다.
오전 4시20분쯤에는 대보리 대보교에서 40대 남성이 물에 떠내려오다가 다리구조물에 걸려 숨진 채 발견됐다.

오전 11시25분쯤에는 가평군 마일리 캠핑장에서 텐트가 토사에 매몰됐는데 이 텐트에는 40대 부부와 10대 아들이 있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또 산하리 계곡지역에서 3명이 실종됐다는 신고도 들어왔다.

이날 가평군에는 조종면 등 지역에 오전 3시30분을 전후해 시간당 76㎜가 쏟아졌으며 일 누적 강수량은 오전 9시30분 기준 197.5㎜를 기록했다.
가평=오상도 기자 sd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