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요리에 쓰는 '채'와 유사한 '필터'를 이용해 단일전자(Single Electron)의 에너지를 원하는 형태로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외부 환경에 의한 전자의 불안정성을 줄이고 양자 상태를 안정적으로 구현할 수 있어, 단일전자 큐비트(양자 컴퓨팅에서 데이터를 인코딩하는 데 사용되는 정보의 기본 단위)의 성능을 한층 높일 기반 기술로 활용될 전망이다.
전자는 원자를 구성하는 기본 입자로, 전자의 이동 경로를 쪼개면 두 가지 경로(0과 1)를 동시에 지나는 양자 중첩 현상을 보인다.
이러한 특성을 정보처리에 활용하면 큐비트를 만들 수 있다.
단일전자 큐비트는 이론상 작은 면적에 수십 개를 구현할 수 있을 만큼 집적성이 뛰어나 양자컴퓨팅의 규모를 확장할 기술로 주목받는다.
하지만 단일전자 큐비트는 외부 환경에 민감한 전자의 특성으로 성능 향상이 어렵다.
큐비트의 성능은 양자 상태를 얼마나 정확히 구현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느냐에 달렸지만, 전자는 너무 작고 민감해 양자 상태를 구현하기 어렵고, 외부 환경이나 다른 전자들과의 상호작용으로 에너지 상태가 불안정해져 양자 성질을 잃기 쉽다.
KRISS 양자소자그룹은 '에너지 필터'를 이용해 단일전자의 에너지 형태를 원하는 대로 제어하고, 전자의 불안정성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진이 이용한 에너지 필터는 요리에 사용하는 '채'와 같이 일정 크기 이상의 에너지를 갖는 전자만 통과하고 나머지는 반사하는 전도성 채널이다.
연구진은 먼저 전자들을 가두는 초미세 반도체 구조인 '양자점(Quantum Dot)'에서 단일전자를 생성했다.
이후 전자의 흐름을 조절하는 초미세 전도 채널인 '양자 포인트 접합(Quantum Point Contact)'에 적절한 전압을 가해 에너지 필터를 형성, 고에너지 전자만 선택적으로 통과시켜 전자의 에너지 불확도(不確度)를 절반 이상 낮추는 데 성공했다.
이번 기술은 고성능 큐비트를 비롯한 단일전자 기반 양자 정보처리 기술 개발에 널리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불필요한 에너지 분포를 제거하고 특정 에너지 범위 내에서만 전자를 조작할 수 있어, 전자의 양자 현상을 더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물론 외부 환경과 다른 전자 간의 상호 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에너지 필터로 제어한 단일전자의 형태를 2차원 그래프상에 시각화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연구진은 에너지 필터를 통과하기 전과 후의 단일전자 형태를 '위그너 분포'로 비교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단일전자의 시간-에너지 정보를 디지털 2차원 그래프로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 기존 실험에서 놓쳤던 단일전자의 양자 특성을 세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배명호 KRISS 양자소자그룹 책임연구원은 "이번 성과는 단일전자를 기반으로 한 양자 정보 기술의 실질적인 응용 가능성을 한층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전북대학교 김주진 교수, 한국과학기술원 심흥선 교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송진동 책임연구원과 협력했으며,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과 KRISS 기본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연구 결과는 나노 레터스(Nano Letters, IF: 9.6)에 지난해 10월 게재됐다.
◇위그너 분포(Wigner Distribution) : 전자의 양자 상태를 시간(위치)-에너지(운동량)의 함수 분포로 변환해 시각적으로 분석하는 방식. 연구진은 이번 실험에서 단일전자의 에너지 변화를 위그너 분포로 비교하고 디지털 신호로 변환해 정밀히 분석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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