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미래전략포럼 연사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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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가 지난달 16일 경기 성남 분당구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 <더팩트>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장윤석 기자 |
글로벌 AI·반도체 패권 전쟁이 벌어지고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변화에 대한 적절한 대응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처럼 대안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새 정부 출범 이후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 맞춰 AI와 반도체, 기후에너지 전문가를 만나 3대 핵심 분야 미래전략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이번 만남은 TF미래전략포럼 개최 한 달여를 앞둔 7월 중순부터 차례로 이뤄졌습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반도체 산업은 대한민국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현재도 고군분투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핵심 산업이다. 그러나 위기론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는 영역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추격 중인 다른 나라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사실상 K-반도체가 생존 기로에 선 모습이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이재명 정부도 K-반도체 산업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고 있다. 산업 지원 확대를 약속하며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K-반도체의 미래, 괜찮을까' 이러한 의문을 안고 지난달 16일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를 만났다. 그는 오는 2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리는 더팩트(TF)미래전략포럼에 'K-반도체 전략' 연사로 나설 예정이다. 산업공학 박사 출신인 안 전무는 지난 1994년부터 반도체 업계에 몸을 담고 있다. 하이닉스반도체 기술기획 선임, 한국고덴시 전략마케팅 팀장, KAIST 나노종합기술원 수석 등을 거쳐 현재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서 협회·조합 실무를 총괄하고 있다.
안 전무 역시 K-반도체의 미래와 관련해 깊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안 전무는 "우리(K-반도체)는 걸어 다니고 있는데, 미국은 뛰어다니고, 중국은 날아다니고 있다"며 "추월당하면 다시 추월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에서 산업 기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메모리 시장 세계 1위…K-반도체 강점 '속도'
K-반도체의 역사는 삼성전자가 1974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며 시작됐다. 50여년이 흐른 지금 메모리 반도체 1위라는 영광을 누리는 중이다. 가장 먼저 안 전무는 반도체 불모지에서 50여년 만에 메모리 반도체 세계 최고 자리에 오르는 등 K-반도체의 저력을 언급했다.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비결로는 '속도'를 꼽았다.
"메모리 반도체는 기술적으로 글로벌 톱이다. 지난해 수출 기준 20.1%니까 경제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시장 지배력 또한 60% 이상, 세계 최고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속도인데, 빠르게 투자해서 빠르게 연구하고, 남들보다 먼저 출시해서 높은 이익률을 달성한다. 이익을 많이 올리니 다시 투자할 수 있는, 이런 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우리가 갖고 있다. 또 좋은 인재들이 열심히 일해서 오늘날의 K-반도체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영역에서는 부족함을 남겼다는 게 안 전무의 설명이다.
"시스템반도체를 30년 동안 열심히 했다. 그런데 티가 나지 않고 있다. 현재 시스템반도체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고 대만, 중국도 잘하고 있다. 우리는 점유율 3% 수준으로, 더 성장하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 파운드리의 경우에는 대만 TSMC가 워낙 기술력이 좋고 고객도 많이 확보하고 있다. 후발주자인 우리와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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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가 <더팩트> 인터뷰에서 K-반도체 강점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장윤석 기자 |
◆ 반도체 경쟁 체제서 최대 위협은 '중국'
'K-반도체, 왜 위기라고 말하는가' 해당 질문에 안 전무는 산업의 분업 구조에서 경쟁 구조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따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된 구조에서 경쟁자들의 추격 또한 매서워지고 있는 형국이다. 안 전무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로 '규모 경쟁'에서 앞서나갈 여력이 충분한 중국을 가리켰다.
"지금까지 반도체는 경쟁이 아니라 분업 구조였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대만이 시스템반도체 제조, 미국이 시스템반도체 설계 장비, 일본이 반도체 장비 소재 등 영역이 전부 다 달라서 분업해 왔다는 것이다. 이 구조에서는 각자 열심히 하면 된다. 각자 열심히 한 뒤에 글로벌이 한 팀으로 움직이는 산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쟁 국면이다.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우리 영역이지만, 이제 미국과 일본 등도 공장을 짓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경쟁자들이 너무 가까이 와 있다는 점이다. 격차 자체가 많이 줄었다. 한국 중심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이 들어왔다. 사실상 기술적 격차는 크지 않고, 규모의 격차만 존재한다고 보면 된다. 중국은 국가 지원에 힘입어 대규모로 투자할 수 있는 만큼 추후 그 규모를 단기간에 늘릴 수 있어 굉장히 위협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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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가 지난 2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행복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 반도체특별법 노동 시간 적용 제외 어떻게?'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 디베이트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배정한 기자 |
◆ 삼성·SK, 10년 버틸 기술력 확보 속도 내야
경쟁자들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공장 운영 비용이 많이 들어 원가가 높아지고, 결국 생산성이 떨어진다. 대만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있다. 중국은 반도체 공급망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현실화되면서 외부로 확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안 전무도 다른 나라의 사정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K-반도체의 여건이 유리하다고 봤다. 그럼에도 현시점에서 다른 나라의 단점이 뚜렷하지 않아, 조금 더 도드라질 때까지 10년 이상 버틸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그 10년을 버티는 힘은 '기술력'이다. 안 전무는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기존 K-반도체의 강점인 '속도'가 제대로 발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쉽게 말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경쟁자에게 추격을 허용하기 전에 기술 개발 속도를 높여 격차를 벌려놔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력 확보를 위한 속도전이 안 전무가 지목한 민간 영역의 숙제다.
"투자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중국과 기술력이 똑같다고 가정하면, 우리는 다시 역전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전부터 초격차 기술력으로 앞서 나가야 한다. 지금보다 기술 개발을 빠르게 하고, 확보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조 시설 투자를 적정한 시기에 추진한 뒤 제품을 빨리 만들어 가장 먼저 비싸게 팔아야 한다. 파운드리도 마찬가지다. 기술을 빨리 개발해 많은 기술을 갖고 있어야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이날 안 전무는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과 관련한 대응법 또한 '기술력'에서 찾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중국은 기술을 갖고 싶어 한다. 나아가 그 기술을 통해 생산을 하고 싶은데, 미국이 이를 막고 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중국과 미국 모두에 필요한 존재다. 미국은 제조 기술력이 없어 우리 제조 기술이 필요하다. 미국의 규제 속 중국은 제조 기술을 가지려면 우리 제품이 필요한 거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계속 유지하려면 기술 경쟁력이 필요하다. 기술 경쟁력이 두 나라보다 앞서 있어야 우리가 존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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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가 <더팩트> 인터뷰에서 기술력 확보를 위한 속도전을 강조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장윤석 기자 |
◆ K-반도체 미래, 정부도 함께 만들어가야
기술 역량을 강화하려면 정부의 지원도 절실하다. 국내 반도체 기업이 연구 개발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도와줄 일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전무는 이를 정부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움직임이라고 표현했다.
"반도체 기업이 제조 시설에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시설 투자에 따른 세액 공제 25%가 있지만, 미국 등 우리와 경쟁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부족한 수준이다. 반도체 특별법도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연구 개발 인력에 대한 보상으로, 연구 개발의 집중도와 속도, 성과를 높이려면 거기에 맞는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 동기부여를 주는 건 기업도 노력해야 하지만, 제도도 필요하고, 나아가 사회 시스템도 갖춰져야 한다."
이날 안 전무는 정부가 풀어야 할 또 다른 숙제로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을 꼽았다. 국내 소부장 산업을 육성해야 다른 나라가 도전장을 내밀더라도 K-반도체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재 소부장은 대부분 수입이다. 이전에는 다른 나라가 공장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아주 좋은 시장이라서 1순위로 공급받았다. 그러나 이제 반도체 시설 투자를 전 국가가 추진하고 있어서 미국, 일본, 유럽 등은 자기 나라에 1순위로 공급할 수 있는 구조다. 우리가 후순위로 밀리면 개발 속도가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경쟁력이 약화되고, 결과적으로 이익이 적게 날 수 있다. 이러한 악순환 고리에 빠져들기 전에 정부가 소부장 산업을 육성,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외에도 이날 안 전무는 K-반도체의 미래와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이제 시작 단계인 AI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차원에서 국내 AI데이터센터에 국내 기업 AI 반도체 제품을 사용, 상용화를 본격화하는 새로운 생태계 구축 전략 등이 대표적이다. 안 전무는 이번 TF미래전략포럼에서도 K-반도체의 현실을 진단한 뒤 미래 성장을 위한 여러 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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