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이어 노란봉투법 처리 급물살
기업들 경영 부담 커질 듯…"재검토 호소"
 |
| 노란봉투법이 여당 주도로 국회 상임위를 통과하는 등 입법 급물살을 타고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기업들이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던 '국회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기업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처리가 급물살을 타고 있고, 더 강한 상법 개정이 예고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경기 침체 장기화, 기술 경쟁 격화, 관세 부담 등 어려운 환경 속에서 '국회 리스크'까지 더해지며 경영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9일 재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는 전날(28일) 오후 열린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을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다음 달 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기업들이 우려한 노란봉투법 관련 리스크가 눈앞에 놓이게 됐다. 노란봉투법은 하청업체 노조도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사용자' 범위를 넓힌다. 또 파업에 나설 수 있는 대상을 근로조건에서 '근로조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영상 결정'으로 넓히는 내용도 포함된다. 파업 등 쟁의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 등도 담고 있다.
그간 재계는 '경영 혼란'을 이유로 노란봉투법을 반대해 왔다. 불명확한 사용자 개념은 수많은 원하청 관계로 이뤄진 산업 생태계에 극심한 혼란을 초래하고, 기업들의 경우 노조의 개별 교섭에 응하느라 경영 활동에 집중할 수 없다는 목소리였다. 노동 쟁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한 것도 노사 간 협력보다는 파업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투쟁 만능주의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노란봉투법 환노위 통과 직후 입장문을 통해 "재계는 노사 관계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중대한 변화인 만큼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사 간의 충분한 협의가 필요함을 강조해 왔다. 또 우리 제조업의 근간을 흔드는 사용자 범위 확대, 노동 쟁의 개념 확대의 경우 현행법을 유지해 달라고 호소해 왔다"며 "그럼에도 노란봉투법이 노동계 요구만 반영돼 통과된 데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국회는 노란봉투법의 일방적인 강행 처리를 중단하고 노사 간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이 법안이 가져올 산업 현장의 혼란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경총을 비롯해 한국경제인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8단체도 공동 입장문을 발표하며 노란봉투법 상임위 통과 등 '국회 리스크'가 본격화된 데 대해 난감한 심정을 거듭 표했다.
 |
| 재계는 노란봉투법 처리가 급물살을 타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노란봉투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손경식 경총 회장. /더팩트 DB |
재계가 이처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리스크가 더해질 경우 경영 부담이 역대급으로 커질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요 기업들은 경기 침체와 경쟁 심화를 상수로 보고 있으며, 올해 2분기에는 비우호적 환율, 미국 관세 리스크 등 대외 경영 악재로 인해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 줄줄이 어닝쇼크를 기록하고 있다.
경제8단체는 "미증유의 복합 위기에 놓여 있는 우리 경제는 올해 0.8%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는 등 초저성장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며칠 앞으로 다가온 대미 통상 협상 결과는 한국 경제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우리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 내외인 상황에서, 한미 관세 협상이 난항을 겪는다면 국내에서 상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길이 사실상 막히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최대 수출 시장을 잃는 것이며, 이에 맞춰 경제 정책 및 기업 경영 전략을 새롭게 수립해야 하는 중대한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국회, 기업이 위기 극복을 위해 하나로 뭉쳐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국회가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 입법을 쏟아내는 것은 기업들에 극도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관세 협상의 결과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자승자박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며 "국회는 지금이라도 우리 기업이 처한 어려움과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지 않길 바란다. 기업들이 외부의 거센 파고를 넘는 데 전념할 수 있도록 부디 불필요한 규제를 거두고, 개정안들을 철저히 국익 관점에서 신중하게 재검토해 주기를 간곡히 호소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노란봉투법이 통과된다면 기업들에 전해질 충격은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상법 개정안이 더 강해진 형태로 통과 수순을 밟고 있는 상황이라 더더욱 그렇다. 재계는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이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되면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행동주의펀드들의 과도한 배당 요구, 경영 개입 등도 충분히 예상된다는 설명이다. 현재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의 내용은 개정안에 추가로 담기고 있으나, 재계가 요구하는 경영권 침해에 대한 보완 입법 방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기업들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그에 걸맞은 경영 환경이 조성돼야 할 필요성을 지속해서 언급하고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새 정부는 경제 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이를 실현해야 할 기업들의 사정은 좋지 않다"며 "전력을 다할 수 없고 계속 위축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rocky@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