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 '달러' 신뢰 의문에 비트코인 등장…이후 가상자산 '난립'
오히려 실물가치 '부족' 두각…기축통화 연동 필요성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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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가상자산의 높은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송금·결제 등 실생활 영역에서 실질적인 편익을 제공하며 빠르게 확산할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챗GPT 생성 이미지 |
가상자산이 실물자산과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으로 새로운 화폐 혁신을 이끌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가상자산의 높은 변동성과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송금·결제 등 실생활 영역에서 실질적인 편익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빠르게 확산될 전망이다. 그러나 달러 패권 강화라는 또 다른 양극화, 국가 통화 주권의 약화, 무분별한 민간 코인 확장, 감독 사각지대 속 금융 리스크 등 새로운 구조적 위기를 동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팩트>는 [스테이블 혁명] 기획을 통해 디지털 화폐로서 스테이블코인이 갖는 잠재력과 한계를 짚고, 국내외 정책당국과 금융업계가 당면한 과제를 함께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 | 김태환 기자] 신뢰 기반의 기축통화 '달러'에 대한 반발로 블록체인의 탈중앙화 기술을 활용한 비트코인이 등장했다. 정부와 중앙은행의 신뢰에 기반한다는 것은 결국 신뢰를 잃었을 때 가치 담보가 안되기에, 특정 중앙 단체나 기관의 제어가 아닌 분산 원장을 활용해 네트워크 참여자 모두에게 발행과 송금 관련 사안을 공유하며 신뢰성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반면 비트코인이 촉발한 가상자산의 확대는 오히려 신뢰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도 동반됐다. 화폐 단위가 크고 가격 변동성이 너무 높아 화폐로서의 기능이 부족해지는 상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달러나 실물 자산과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법정 화폐의 유동성 대응과 규제안을 충족하면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결제와 송금 등의 사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 금융위기가 촉발한 양적완화…달러의 기축통화 위기
지난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부실로 촉발된 금융위기는 전 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전 세계의 투자은행과 펀드매니저들은 새로운 저위험 고소득 투자처를 찾았고, CDO(부채담보부증권)에 대한 투자를 늘리게 됐다. 은행은 집에 대한 저당권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함과 동시에 유동성을 확보하고, 이는 은행이 더욱 많은 자금을 유치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돈으로 다른 파생에 투자하고 투자자들은 돈을 벌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은행은 여기에 주택담보부증권(MBS)까지 발행하게 된다. 모기지론 이용자에게 대출해 주면서 묶인 돈을 다시 활용해 다른 사람에게 대출해 주는 방식이다. 이를통해, '대출금'을 '증권'으로 만들어 불특정 다수의 투자자한테 팔아넘길 수 있게 됐고, 은행은 그렇게 얻어낸 자금을 다시 대출했다. 이자율은 점점 낮아졌고 시중에는 많은 돈이 풀려 자산가격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거품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2004년부터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17차례 연속으로 인상하며 1.00%였던 기준금리는 2006년 6월 5.25%로 올랐다. 금리 상승으로 인해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대출자들이 대거 채무불이행 상태에 놓이게 됐다. CDO와 MBS의 가치는 폭락했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기관 간 신뢰 붕괴되고, AIG, 메릴린치 등 대형 금융기관들도 연쇄적으로 위기를 맞았다.
2007년까지 2%대를 유지하던 미국의 GDP성장률은 -0.1%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5%대에서 연말엔 7.3%, 2009년엔 10%대까지 치솟았다. 소비자물가상승률(CPI)는 0.1%대로 주저앉았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양적 완화(QE)' 정책을 펼치게 된다. 기준금리를 지극히 낮게 책정하고, 국채를 매입해 시중에 유동성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전략이다. 3차에 걸친 양적완화 시행으로 미국 정부의 부채는 2008년 10조달러 수준에서 2014년 약 16조7000억달러로 늘어나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양극화가 나타났다. 달러 공급이 폭증했고, 인플레이션 강화와 더불어 주식과 부동산 등의 자산 버블, 통화가치 하락 등의 부작용이 나타났다. 자산가격의 급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일각에서는 '벼락 거지'라는 표현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금융위기가 결국 기축통화인 달러와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중앙화된 시스템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현재의 기축통화는 국가와 정부에 대한 신용으로 작동하지만, 그 국가와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 사람들은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운동으로 저항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지난 2011년 9월 17일 뉴욕 월가에서 시작된 반금융 시위로, 1% 부유층과 금융권의 탐욕을 규탄하며 "우리는 99%"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사람들의 불안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좌지우지하는 정부의 신뢰도를 믿지 못한다는데 있다. 화폐의 역사는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역사이며, 달러 역시 초창기에는 금본위제를 통해 금과 연동된 화폐였다. 금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해 사실상 세계의 기축통화로 역할을 해왔다. 달러를 금으로 교환하는 것을 '금태환'이라고 불러 '금태환제도'라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1971년 닉슨 대통령은 달러와 금의 교환을 일방적으로 중단하는 '금태환제 폐지'를 선언한다. 미국의 과도한 베트남전 지출, 무역 적자 등으로 인해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금본위제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달러가 기축통화의 역할과 패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페트로 달러'의 도입 덕분이다. 미국은 1970년대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과의 비공식 합의를 통해 원유 거래를 달러로만 결제하도록 유도했으며, 이는 달러의 국제적 수요를 고정시키는 핵심 장치가 됐다. 원유는 사실상 에너지의 역할을 하며, 에너지 확보는 국가 운영에 필수 조건이다. 달러 없이는 국가 운영이 안되도록 만든 셈이다. 이를 통해 국제통화기금(IMF)부터 시작해 송금 시스템인 스위프트(SWIFT) 등 국제 금융 시스템 전반이 달러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신뢰 기반'이라는데 있다. 기존에는 금 1온스 = 35달러 였지만, 이젠 정량적 지표가 없어졌고, 미국이라는 국가의 신용과 신뢰도만으로 가치가 담보됐다. 이렇다보니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마음만 먹으면 무한정 달러를 찍어 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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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차에 걸친 양적완화 시행으로 미국 정부의 부채는 2008년 10조달러 수준에서 2014년 약 16조7000억달러로 늘어나게 된다. 사진은 미국 연방정부의 국가 부채 총액 규모. /미국 재무부 |
◆ 저항하며 등장한 '비트코인'…가격 변동성 문제 부각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전 세계가 타격을 입고 양적완화 정책이 한창이던 2009년. 공교롭게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사람이 논문을 하나 낸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비트코인:개인 대 개인(P2P) 전자화폐 시스템'에 대한 내용이었다.
비트코인은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어느 한 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직접 전달되는 온라인 결제를 지원한다. 결제와 송금에 쓰이는 네트워크를 어느 기관에 의지하지 않고, 네트워크 거래를 암호화 기반의 작업증명을 연결한 체인으로 만들고, 기록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즉,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이용자 모두에게 비트코인의 변동사항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된다.
특히 달러처럼 '무한정'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2100만개로 총 발행량이 프로토콜에 의해 고정돼 있다. 작업증명을 통해 비트코인을 '채굴'하며 2140년경에 모든 2100만개가 채굴 완료될 예정이다. 채굴량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줄어드는 '반감기'를 통해 비트코인의 희소성과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기존 기축통화 질서에 대한 저항이 담겨 있다. 제일 처음 발행한 0번 블록(제네시스 블록)에 사토시 나타모토는 "2009년 1월 3일자 《더 타임스》: 영국 재무장관, 두 번째 은행 구제금융 직전에(The Times 03/Jan/2009 Chancellor on brink of second bailout for banks)"라는 문구를 삽입했다. 이는 단순히 날짜를 표기한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가 반복적으로 금융기관을 구제하고 있음을 비판한 메시지다.
최초 채굴된 이후 실험적인 거래가 시작된 비트코인은 불과 0.01달러 수준에 가치가 책정됐다. 이후 키프로스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한 2013년 처음으로 1100달러를 돌파한 뒤 등락을 거듭하다가 2017년 이더리움의 등장 이후 초기 코인 공개(ICO)열풍이 불며 비트코인도 급등하기 시작한다. 이더리움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구동함과 동시에 결제송금 시스템도 더하게 됐는데, 다양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도록 촉매제가 됐다. ICO를 통해 사업 투자금을 유치하고,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으로 지급해주는 방식이 유행했다. 1000달러 수준이던 비트코인은 1만3000달러까지 폭등했다.
하지만 시장은 곧 비트코인이 '실질적인 화폐'로 기능하기에는가격 변동성이 너무 크다는 한계를 인식했다. 비트코인은 총량 2100만개 고정을 통해 희소성을 확보했지만 이 때문에 미리 비트코인을 다수 확보한 '고래'에 의해 가격 변동성이 매우 심하다. 화폐 수요 증가 시 중앙은행처럼 유동성을 공급해 경기 대응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통화정책 기능은 결여돼 있다. 화폐에 대한 수요가 갑자기 늘어났을 때, 중앙은행의 경우 기준금리를 내려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비트코인은 대응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기업 주식이나 법정통화처럼 강제력이 없다는 점도 문제가 됐다. 가격 형성이 오로지 시장 심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사실상 '적정 가치'에 대한 기준이 없다.
◆ 스테이블 코인의 등장…기축통화의 새로운 가능성 제시
비트코인의 한계는 가상자산을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시도에 장애물이 됐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자산 ‘스테이블코인’이 부상하게 된다.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나 원화 등 법정 화폐에 1:1로 고정돼 변동성이 낮다. 특히 블록체인 네트워크 기반으로 은행 없이도 거래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송금 속도가 빠르고, 수수료 부담이 거의 없다. 법정 화폐가 가진 가치의 안정성과 글로벌 금융 인프라의 개선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셈이다.
기존 국제금융망이 SWIFT망을 활용할 때는 영업일 내 송금이 가능하며 최종적으로 송금이 완료될 때까지 2~3일 가량 소요된다. 여기에 기존 화폐를 달러로 환전하고, 다시 달러를 현지 화폐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환전수수료와 중계비를 포함해 수십~수백달러가 추가로 필요하다.
반면, 스테이블 코인은 전자지갑만 있다면 전 세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24시간 내도록 거래가 가능하다. 수수료의 경우도 거래금액에 비례해 붙지 않기 때문에 수 센트~1달러 이하로 책정된다.
전통 은행망보다 훨씬 빠르게 순환하기에 실질적인 통화 공급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나타난다. 실제 달러에 연동된 스테이블 코인 테더(USDT)는 2024년 기준 시가총액 1100억 달러 이상이며, 이는 일부 중소국가 전체 통화량(M2)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다만, 중앙은행의 통제 밖에서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된 디지털 통화가 대규모로 유통될 경우, 이는 통화정책의 전달력을 약화시키고, 금융 안정성 리스크(대규모 환매, 준비금 부족 등)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비트코인은 발행량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금'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스테이블 코인은 법정 화폐와 연동되는 가상자산 계의 '달러' 역할을 한다"면서 "기존 결제와 송금 시스템에서 부족한 부분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보완하고, 국가 입장에서는 더욱 신속하고 정확하게 통화를 공급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imthin@tf.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