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되는 가격경쟁에 칼 빼든 中 당국 [차이나우]세계일보 기사제공: 2025-07-27 05:33:32

중국 정부가 산업 전반에 걸친 무질서한 가격 인하 경쟁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25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와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은 전날 ‘중화인민공화국 가격법 개정 초안’을 발표하고, 다음달 23일까지 대국민 의견 수렴에 돌입했다.
1998년 현행 가격법이 제정된 이후 27년 만의 전면 개정이다.

사진=AFP연합뉴스

이번 개정안은 저가 덤핑, 알고리즘 조작, 디지털 플랫폼 간 과열 할인 경쟁 등 최근 중국 산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제 살 깎기’식 출혈 경쟁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발개위는 “신경제와 새로운 업종·모델이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일부 산업에서 무질서한 저가 경쟁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다”며 개정 필요성을 설명했다.

중국 경제는 부동산 부진과 내수 침체 속에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압력까지 겹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주요 산업군에서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한 초저가 경쟁이 확산되자 당국은 이를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번 가격법 개정은 시장 기능을 존중하되 지나친 가격 파괴에 대해서는 법적 장치를 동원해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개정 초안은 우선 원가 이하로 상품을 판매하거나 다른 사업자에게 덤핑을 강요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했다.
이는 경쟁자를 퇴출시키거나 시장을 독점하려는 목적의 가격 인하에 대한 대응으로 신선식품이나 계절성 상품, 재고 처분 등 합리적 사유의 인하와 구별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행법이 물리적 상품에만 적용되던 규제를 디지털 플랫폼과 서비스 분야로 확대한 것도 이번 개정의 핵심이다.
개정안은 알고리즘·데이터·기술 수단을 활용해 가격을 조작하거나 소비자에게 불공정한 조건을 제시하는 행위를 ‘부당 가격행위’로 명문화했다.
인공지능(AI) 기반 가격 책정, 자동화된 할인 전략 등이 법적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는 구조다.

가격 담합의 판별 기준도 완화됐다.
기존에는 ‘상호 담합’, ‘시장 가격 조작’, ‘소비자 권익 침해’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불법으로 간주됐지만, 앞으로는 둘 중 하나만 해당돼도 담합으로 판단할 수 있다.
아울러 공공기관이나 업계 협회, 국유기업 등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특정 상품의 강매나 서비스를 통한 이익 강요를 할 경우에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정부 업무보고에 담긴 ‘내권(內卷)’식 경쟁 통제 방침의 연장선에 있다.
내권은 구조적 과잉 속에서 생산 주체들이 효율이나 혁신 대신 가격 인하 경쟁에만 몰두해 스스로를 갉아먹는 상태를 뜻한다.
중국에서는 특히 전기차, 배달 플랫폼, 태양광, 배터리 업계에서 이 같은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사진=신화연합뉴스

최근 음식 배달 플랫폼 시장은 대표적 사례다.
메이퇀, 어러머의 양강 구도 속에서 징둥이 새롭게 뛰어들며, 배달비 무료는 물론 음식까지 무상으로 제공하는 ‘0위안 배달’이 등장했다.
중국 내 주요 도시의 요식업 협회는 “이 같은 과도한 보조금 경쟁이 결국 플랫폼, 입점 상점, 소비자 모두의 이익을 해친다”고 성명을 발표했고,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도 18일 세 기업을 소환해 공정 경쟁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25위안 결제 시 25위안 할인’, ‘무료 음료권’ 같은 이벤트가 지속되자 관영 매체들은 “보조금 중독이 지속되고 있다”며 공개 비판에 나섰다.

전기차 업계도 당국의 타깃이다.
리창 총리는 지난 16일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신에너지차 산업에 비이성적 경쟁이 존재한다”며 시장 규범화를 강조했다.
중국 당국은 이미 지난달 비야디(BYD) 등 주요 제조사를 소환해 원가 이하 차량 판매를 자제하라고 경고했으며, 일부 기업에는 ‘주행거리 0㎞’의 신차를 중고차처럼 유통해 판매 실적을 부풀리는 행위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당국이 자동차 제조사의 납품 대금 지급 문제와 품질 검사 기준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중국 지도부의 경계심은 최고위급까지 확산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14일 중앙도시공작회의에서 “전국 각 성이 모두 AI, 컴퓨팅파워, 신에너지차를 똑같이 키워야 하느냐”고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개별 지방정부의 유사 산업 중복투자가 과잉 공급과 가격 파괴를 부른다는 구조적 문제의식을 드러낸 셈이다.
중국공산당 기관 인민일보도 25일 논평에서 “가격이 아니라 가치, 업계 경쟁이 아니라 사용자 중심으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지적하며 “소비자에게 단기적으로 혜택처럼 보이는 가격 인하가 장기적으로는 모두에게 손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는 가격법 외에도 ‘반부정당경쟁법’ 개정안, ‘전자상거래법’ 하위 규정 강화 등 관련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이번 움직임이 단순한 산업 질서 정비 차원을 넘어, 공급과잉으로 인한 가격 인하가 수익 악화로 연결되고 결국 투자가 위축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한 체계적 대응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황톈레이 연구원은 “궁극적으로 중앙정부가 과잉공급 산업에서 지방 간 출혈성 경쟁을 장려하는 구조를 재조정해야 한다”며 “전기차, 태양광, 플랫폼 산업 등은 모두 구조적 조정이 불가피한 단계에 와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이우중 특파원 lol@segye.com